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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칼럼] 윤석열과 검찰개혁의 역설 - 한겨레

[박찬수 칼럼] 윤석열과 검찰개혁의 역설 - 한겨레

검찰개혁의 요체는 검찰의 힘을 빼는 것이다. 검찰 권한이 약해지면 정치적 중립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검찰 손에 예리한 칼을 쥐여주되 잘 제어해서 ‘착한 칼잡이, 올바른 칼잡이’로 만들겠다는 건 어리석은 기대에 불과하다.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 주최 7차 촛불집회가 9월28일 저녁 대검찰청과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동 반포대로에서 열렸다. 참가 시민들이 ‘정치검찰 물러나라' 등의 손팻말을 들어올리며 검찰개혁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검찰개혁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 주최 7차 촛불집회가 9월28일 저녁 대검찰청과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이 모여 있는 서울 서초동 반포대로에서 열렸다. 참가 시민들이 ‘정치검찰 물러나라' 등의 손팻말을 들어올리며 검찰개혁 촉구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지난 주말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일대에 울려퍼진 시민들의 외침은 ‘검찰개혁’이 피할 수 없는 절박한 과제임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헌정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1998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은 법무부를 찾아 자신을 핍박한 검찰에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고 말했고, 검찰은 이 말을 휘호로 써서 대검찰청 회의실에 걸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검찰은 바로 서지 못했고, ‘검찰개혁’은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왜 그런가. 검찰개혁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을 해야, 서초동 촛불집회의 염원이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 특별 지시로 서울지검에 12·12와 5·18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된 1995년 12월, “우리는 개다. 물라면 물고 물지 말라면 안 문다”고 어느 검사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불과 몇달 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희한한 논리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줬던 검찰이 이번엔 그들을 잡아넣기 위해 ‘명운을 건 수사’에 들어간 걸 두고 한 말이다. ‘검찰은 개다.’ 12월18일치 <�한겨레신문>에 실린 김인현 기자 칼럼의 이 구절은 두고두고 ‘정치검찰’의 상징으로 입길에 올랐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전례 없는 직접 대화에서 검사들이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도 그것이었다. 권력이 검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검찰을 독립시켜 달라, 대통령이 인사하지 말고 검찰총장에게 인사권을 달라, 정치권력과 분리되면 올바른 검찰로 거듭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수사에 개입하지 않고 검찰과 거리를 두려 애썼지만, 그것이 ‘올바른 검찰’을 만들지 못했다는 건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1980년대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인’을 여럿 만들어낸 경찰의 강압 수사, 그리고 정보기관의 불법 수사가 밀려난 자리를 고스란히 차지한 게 최고의 엘리트와 법적 논리로 무장한 검찰 권력이었다. 정치권력이 검찰을 활용했지만, 어느 순간 검찰 스스로 여야를 이리저리 치며 정권을 판가름하는 위치에까지 올랐다. 검사 출신의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검찰개혁의 요체는 검찰의 힘을 빼는 것이다. 검찰 권한이 약해지면 정치적 중립은 자연스레 따라온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검찰개혁이 이슈가 되지 않는 건, 검찰이 우리처럼 막강한 권한을 갖지 않기 때문이란 뜻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가진 사법기관은 한국 검찰이 거의 유일하다. 과도한 힘을 가진 집단은 그 힘을 항상 착하고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중립’이란 우산을 쓰고 스스로 ‘절대 권력’이 되려 한다. 한국 검찰이 지금 그런 단계에 와 있는 게 아닐까. 국회 인사청문회 전에 대대적 수사를 벌여 장관의 자진 사퇴를 압박하는 건 그런 징표로 읽힌다. 검찰 손에 예리한 칼을 쥐여주되 잘 제어해서 ‘착한 칼잡이, 올바른 칼잡이’로 만들겠다는 건 어리석은 기대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런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지난해 1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하면서 “이미 검찰이 잘하고 있는 특수수사 등에 한해 직접 수사를 인정하겠다”며 방대한 규모의 특수부를 용인했다. 그 특수부가 지금 대통령 인사권에 개입하고 국회 권한을 넘나들며 법무부 장관의 적격 여부를 가리겠다고 칼을 휘두른다. 역설적이다. 그러나 진짜 역설은 지금부터다. 조국 장관을 겨눈 검찰 수사는 진정한 검찰개혁, 곧 검찰의 힘을 확실하게 빼는 전기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며칠 전 ‘검찰의 민주적 통제’를 강조하며 형사부와 공판부 강화를 지시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 기능을 축소하란 뜻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곧바로 서울 등 3곳만 남겨두고 나머지 지방청 특수부를 없애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엔 4개 특수부 말고도 공정거래조사부 등의 이름으로 직접 수사를 하는 부서가 여럿 있다. 간판만 바꿔 달거나 핵심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지방 특수부 몇개 없애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윤석열 총장이 ‘특수부 축소’를 치고나온 건, 일단 소낙비를 피하겠다는 의도일 수 있다. 일시적 변화로 끝나지 않으려면, 대통령령 개정 등을 통해 법무부 장관이 치밀하고 뚝심 있게 제도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 윤석열 총장의 오만이 없었다면, 검찰주의자들의 진면목을 국민이 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수십만명이 검찰청사를 에워싸고 ‘개혁’을 외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예정된 길로만 흐르지 않는다.
박찬수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2019-10-02 06:16:35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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