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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법의학 이야기-냉정한 법의학](20)'자살'로 알려진 고흐의 죽음, 법의학의 눈으로 보면 '타살'이다 - 경향신문

[서중석의 법의학 이야기-냉정한 법의학](20)'자살'로 알려진 고흐의 죽음, 법의학의 눈으로 보면 '타살'이다 - 경향신문

냉정한 법의학

[서중석의 법의학 이야기-침묵 속의 진실을 찾아서](20)‘자살’로 알려진 고흐의 죽음, 법의학의 눈으로 보면 ‘타살’이다

‘야속한 법의학.’

2004년 여름, 더위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중부지역 ○○시 재개발지역 다세대주택 건설 현장에서 중년의 근로자가 일을 시작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나 사망한 채 발견됐다. 그는 더위를 피하려고 아침 일찍부터 보조사다리를 밟고 1층 벽 페인트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내부공사를 하고 있던 동료는 한동안 아무런 인기척이 없자 망자를 불러 보았다. 계속 대답이 없어 이상하게 여긴 동료가 밖으로 나와 보니 망자는 응달진 바닥에 쓰러져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망인은 평소 특별한 질병 없이 건강하였지만, 당일 아침엔 머리가 아프고 메슥거리며 어지럽다고 하며 인근 약국에서 두통약을 구매해 복용했다고 하였다. 그는 주로 공사 현장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상해 혹은 사고에 대비해 1년 전부터 보험에 가입했다. 유족들은 부검을 통해 사인을 규명하고 보상을 받고자 했다. 나는 부검을 시작하기 전 수사관들로부터 사건 개요와 더불어 현장 상황을 제공받았다. 현장은 추락이나 교통사고를 고려할 상태는 아니었다. 당일 기온이 높긴 하였으나 사건이 발생한 시간은 아침이었고, 비교적 응달진 곳이어서 온도 이상으로 사망할 환경 또한 아니었다. 부검소견은 비교적 간단했다. 외표 검사상 무릎 부위에서 작은 까진 상처를 보는 정도였다. 내부 장기를 절개해 보니 급사한 소견과 더불어 소뇌에서 다량의 뇌출혈이 확인됐다. 결국 망자는 뇌출혈이라는 질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유족들은 안타깝게도 상해보험 혜택을 받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법의학은 “법률상 문제 되는 의학적 사항을 과학적으로 밝혀내고, 이를 해결함으로써 법 운용에 도움을 주며 인권 옹호에 이바지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돼 있다. 의사들은 의대 시절부터 철저하게 질병과 환자 중심으로 교육받고 진료한다. 의학도들에게 죽음을 다루는 법의학은 생소하기도 하고, 일부 대학에서는 교육받을 기회마저도 없다. 따라서 환자의 질병 치료를 담당하는 임상의학에 비해 사회의학인 법의학은 전공하는 사람도 적고, 만성적인 인력난으로 고단한 길이다.

이에 법의학을 전공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은 법의학자들에게 항상 신뢰와 사랑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막연하게나마 법의관들이 망자의 억울함을 들어주거나 그들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도록 일할 것이라 믿기 때문에 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법의학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국민이 듣고 싶어 하는 바를 이야기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법의관들은 어쩔 수 없이 비난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나는 올해부터 대학에서 ‘법의학으로 보는 사회 갈등’이라는 교양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강의는 기본적인 법의학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각종 죽음이나 사건은 물론 낙태, 성폭력, 안락사, 고독사 등과 같은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설정해 열린 토론을 하는 것으로 구성돼 있다. 두 달 전, 한 학생이 ‘야속한 법의학’이란 제목으로 주제발표를 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법의학자들이 사람들에게 때론 야속하다 못해 밉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해 왔다. 하지만 막상 학생들의 진솔한 토론을 통해 법의학의 단면을 들여다보면서 또 다른 많은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우리 법의관들 머릿속에는 늘 강력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관련 용의자를 찾아내기 위해 검안과 부검으로 손상을 해석하고, 행동방식을 규명하며, 결정적 증거를 찾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규명한답시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유족들에게 잔인한 사실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을까? 얼마 전 혼자 살던 노인이 자신의 방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그는 부인과 사별하고 10년 넘게 홀로 농사를 지으면서 고향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연락받은 유족은 그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검소견의 시작은 예상과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큰 혈관을 비롯한 모든 장기는 심각한 노인성 변화를 보여 줬다. 그러나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부검은 위 내용물에 대한 육안검사에서 반전됐다. 위 속에서는 아직 소화되지 않은 음식과 함께 다수의 약이 관찰됐으며, 1차 부검 직후 나는 유족들에게 중독사 가능성을 설명했다. 일순간 유족들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후 정밀검사에서 진통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약물들이 치사량 이상으로 검출돼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감정했다.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노인은 밀려오는 고통을 참기 위해 처방받은 약을 한꺼번에 복용했을 것으로 생각됐다. 아마도 가족들은 한동안 가슴앓이를 할 것이다. 이것이 야속한 법의학이다.

1890년 자기 배에 총 쐈다는 고흐
오른손잡이의 왼쪽 옆구리 총격
총창을 보면 살해 가능성 높아

법의학은 국가와 시대에 관계없이 정말 야속하고 냉정한 것인가? 학생의 주제발표에 이용된 첫 번째 사례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미국의 유명한 디 마이오라는 법의학자는 <진실을 읽는 시간>이라는 저서를 통해 1890년 고흐의 죽음을 분석하며 그의 죽음은 타살일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고흐는 파리 교외 한 시골 마을에 있는 허름한 여인숙에서 기이한 생활을 하면서 독특한 화풍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그는 정신질환, 특히 우울증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으며, 여러 번의 심각한 실수뿐만 아니라 귀를 절단하는 등 자해 소동이 있었다. 이런 행위는 그의 불가사의한 정신세계 속에서 창작된 신비감에 가득 찬 작품세계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마침내 고흐는 총으로 자신의 배를 쏴서 자살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 배에 총을 쏘았다고 했으며, 당시 사회 분위기도 그의 자살은 고독한 천재 화가에 걸맞은 죽음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법의학은 달랐다. 디 마이오는 오른손잡이인 그가 배 왼쪽을 쏘아 자살했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며, 총창 사입부 등의 소견으로 볼 때 타살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사회가 만든 고흐 일생의 결말이 허구임을 지적했고, 결국 일반인들 생각과는 정반대 의견을 개진해 법의학의 냉정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여기서 법의학이 어떻게 자살과 타살을 감별하는지 잠시 소개해 보도록 하자. 흉기, 특히 권총으로 자살을 기도할 경우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가해할 수 있는 부위를 선택한다. 총기를 이용해 자살할 때는 자신의 머리, 입 혹은 가슴을 쏘게 되는데 배를 쏘는 경우는 드물며, 특히 오른손잡이가 스스로 왼옆구리를 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아울러 권총을 이용한 자·타살 감별에 사거리를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총구를 피부에 밀착하고 발사한 경우를 접사(contact shot)라 하고, 근접사는 피부에 닿을 듯 말 듯 밀착되지는 않은 채 약 0.5~1㎝ 이내에서 발사된 경우를 말한다. 또 총신의 길이만큼의 거리, 즉 30~45㎝ 정도 이내에서 발사한 경우를 근사라고 하며, 그 이상을 원사라고 한다. 총으로 자살하는 경우는 대개 접사 혹은 근접사로 사망한다. 이때 소위 사입구는 특징적이다. 총알이 들어간 그 내부 혹은 바로 주변에 그을음이 있거나 화상을 입기도 하고, 머리 쪽은 사입구가 별 모양으로 파열되는 등 특징적 소견을 보이게 된다.

디 마이오는 이러한 법의학적 근거를 통해 고흐의 총창이 타살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결론 내게 된다. 총구를 배에 대고 쏘았다고 가정한다면, 옷에 그을음이 묻거나 피부에 적지 않은 화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종 자료에 의하면 고흐의 총창은 깨끗했기 때문에 총이 적어도 일정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발사된 원사라고 판단했다. 또 당시 프랑스의 조용한 마을에 총기 자체가 흔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총은 누구의 소유이며, 사용된 총기는 누가 가지고 있는가를 밝혀야 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했다. 어쨌든 당시 기록으로도 고흐는 총을 다루는 방법을 알지 못했으며, 나의 추측으로도 고흐는 누군가에 의해 총상을 입게 됐으나, 그의 성품으로 보아 이것조차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인종차별로 간주된 총격사건도
구타당한 뒤 정당방위로 드러나
가수 김광석에 대한 타살 의혹도
과학수사의 관점에선 자살 결론

<진실을 읽는 시간>의 저자인 미국 법의학자 빈센트 디 마이오가 2013년 7월 법정에서 피고인 조지 지머맨의 얼굴 상처를 배심원단에게 설명하고 있다. 플로리다주 한 작은 도시의 방범대원이었던 지머맨은 2012년 2월 흑인 소년을 총으로 살해했다. 인종차별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했지만, 흑인 소년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했던 지머맨은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사 결과 흑인 소년이 지머맨을 무차별 구타한 사실 등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때로 법의학은 이처럼 여론의 법감정과는 달리 냉정하다. 소소의책 제공

<진실을 읽는 시간>의 저자인 미국 법의학자 빈센트 디 마이오가 2013년 7월 법정에서 피고인 조지 지머맨의 얼굴 상처를 배심원단에게 설명하고 있다. 플로리다주 한 작은 도시의 방범대원이었던 지머맨은 2012년 2월 흑인 소년을 총으로 살해했다. 인종차별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했지만, 흑인 소년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했던 지머맨은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사 결과 흑인 소년이 지머맨을 무차별 구타한 사실 등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때로 법의학은 이처럼 여론의 법감정과는 달리 냉정하다. 소소의책 제공

한편 디 마이오가 소개한 두 번째 사건 역시 2012년 2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발생한 총격사건이었다. 백인인 조지 지머맨이라는 마을 방범대원이 흑인 소년을 총으로 살해했다. 부검소견만으로는 타살에 합당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 사건을 인종차별로 간주하고 맹비난했으며, 당시 인종차별 문제는 미국 사회의 쟁점이 됐다. 그러나 추가 조사를 해 보니 상황은 달랐다. 흑인 소년이 지머맨을 무차별 구타했고, 결국 지머맨 몸 위에 올라타자 위태로움을 느낀 지머맨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총을 발사했음이 밝혀졌다. 많은 사람의 기대와는 달리 결국 정당방위로 무죄가 선고됐다. 이 사건에서도 과학수사와 법의학은 냉정했다.

우리나라는 단기간에 국가발전을 이루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성취되는 과정에서 의문사가 적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단순 변사사건에서도 사인과 사망 종류를 두고 심한 갈등이 빚어진 경우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96년 김광석의 애석한 죽음이다.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도 유능했던 동료 법의관의 집도로 부검이 이뤄졌으며, 추후 현장 상황과 수사 내용을 종합해 사인은 목맴이었고, 타살의 근거는 없다고 감정됐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타살 근거로 통상의 법의학적 이론이 아닌 출처 없는 황당한 내용들이 제시됐다. 일부 언론 역시 국민의 일반적인 정서를 등에 업고, 책임지지 못할 이야기를 쏟아냈다. 심지어 TV 토론자 중 한 사람이 법의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근거 없는 경험을 바탕으로 타살 가능성을 무책임하게 주장하는 장면은 참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광석의 노랫말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도 아쉬워했다. 그러나 집도의는 물론 우리나라 법의학 종사자들은 야속하게도 국민이 듣고자 하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때론 진실이 잔인한 현실이어도
어느 누구의 편도 들어줄 수 없다
있는 그대로를 말할 수밖에…

개인적으로 아쉬운 사건은 2000년대 중반 중년의 농민이 여의도에서 시위 도중 머리를 다쳐 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한 건이었다. 당시 머리 손상이 진압에 사용되는 방패로 가격한 것인가, 아니면 시위 도중 넘어져 생긴 것인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부검소견상 머리 손상은 직접적인 구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뒤로 넘어지면서 발생된 것이라고 판단됐다. 시위진압에 쫓기면서 넘어진 것이지만 직접 가격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감정한 젊은 법의관은 정치적 상황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국과수를 떠나게 됐다. 이게 바로 법의학이며, 우리의 집도 행위는 항상 환영받지는 못한다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법의학은 항상 있는 것을 그대로 말해야 하는 의학이고, 이 큰 짐 또한 법의학의 매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디 마이오는 “진실이란 그런 것”이라고 했고, 내가 경험한 우리나라 법의학은 사실을 변조하거나 왜곡하지 않는, 바보 같지만 정직한 것이었다.

그렇다. 법의학은 죽음을 악용하는 나쁜 사람들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면 가슴 아픈 사람들에게 야속함을 줄 수도 있다. 법의학은 무미건조한 진실을 밝힐 뿐, 사회적 강자의 편도, 약자의 편도 들어주지 않는다. 따라서 후배 법의관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주눅 들지 말고 진실 앞에 침묵하지 않을 것을 부탁한다.

■ 필자 서중석
[서중석의 법의학 이야기-침묵 속의 진실을 찾아서](20)‘자살’로 알려진 고흐의 죽음, 법의학의 눈으로 보면 ‘타살’이다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 중앙대 의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법의관으로 국과수에 들어간 뒤 법의학부 부장, 원장 등으로 25년여를 국과수에서 지냈다. 대한법의학회장·아시아법과학회장, 중앙대 의대 겸임교수, 경찰대 외래교수, 대전보건대 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장 및 성균관대 교수로 검안, 부검과 강의활동 등을 통해 법의학 발전에 역할을 하고 있다.


2019-11-24 06:53:00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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